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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의 눈

창작 시

by Tabris4547 2023. 2. 2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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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의 눈

 

오늘 이렇게 더운데

당신의 머리엔 눈이 수북하네요.

 

겨울에 쌓인 눈

왜 아직도 털지 않았어요?

 

가까이서보니

29년동안 쌓인거네요.

 

저 눈은 초등학교때 싸우고 교무실 갔을때

저기 저 눈은 고등학교때 맞아서 경찰서 갔을때

여기 이 눈은 대학교 초반에 그만둔다 말했을때

저 말리 저 눈은 언젠가 죽고 싶다 했을때

 

만년설이 되어간 눈에

지금도 두껍게 쌓여가네요.

 

 

*오늘 어머니가 누워서 TV를 보시는데

그 동안 전혀 보이지 않았던 흰머리가

이마쪽에 크게 보였다.

어머니는 실제로 최근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얼마전, 아버지가 직장암 2기 판정을 받으시고

식단을 건강식으로 싹 고쳤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떻게하면 암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이것저것 찾아보셨다.

오늘은 수술을 위해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오시는 길.

그동안의 고생이 컸던 걸까.

여태까지는 희미하게 보였던 흰머리가

오늘따라 유독 크게 느껴졌다.

 

근데, 저 흰머리가 나 때문이라고 느껴졌다.

20대 이전에, 정말 부모님 속 많이 썩였다.

초등학교때는 애들이랑 툭하면 싸웠지.

중학교때는 맞고다녔지

고등학교때는 맞다가 경찰서까지 가고

어떤 사건 때문에 정신과도 간 적 있었고

현역 수능 끝나고 내가 뭐하는 인간인가 싶어서 서글퍼운적 있었지.

그래서 20대부터는 사고를 안 칠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대학 초반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학교 자퇴하고 싶다 한 적 있었지

또 언젠가는 죽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고...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그만!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때랑 뭐가 다른가.

적성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퇴사하고 공부한다고 포장했지만

내 스스로, 그리고 세상에 대해 도망치고 있었다.

"지원해봤자 시험에서 떨어짐"

"가도 내가 적응 못할 거임"

핑계도 참 만들기 쉽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제 더는 싫다"

라는 말을 저렇게 속여왔다.

물론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구구절절 설명할 수 있다.

그럼 누군가는

"이 세상이 잘못한 겁니다! 당신은 아무 잘못없어!"

라고 입발린 소리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가.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모자라

내가 한 약속조차 스스로 지키지 않으니.

그리고 결과적으로 

소중한 사람을 힘들게 했으니.

 

 

시를 적으면서 처음으로 울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웠다.

생각해보니 몇달전 어떤 친구한데

'다시는 안하겠다'라고 새끼손가락 걸고 한 약속조차

어느센가 지키지 않고 있었다.

일본 속담에 약속 안 지키면 바늘 천 개를 삼킨다는데

아마 바늘이 따가워서 울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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