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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구려는 삼국통일을 하지 않았을까?

산업이야기

by Tabris4547 2022. 12. 1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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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배울 때

가장 국뽕이 차오르는 파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삼국시대 중 고구려 파트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려하면 '영토확장'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좁은 땅덩어리에서 고생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드넓은 만주벌판을 뛰어다니는 고구려가

하나의 로망처럼 느껴집니다.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법한

고구려 전성기때의 지도.

실제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왕 3대에 이어

최대의 영토를 구축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그만큼 국력도 강했고요.

이렇게 고구려가 강력했던 만큼

후손들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크게 남습니다.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3국통일을 했다면

지금쯤 우리가 중국,일본 전혀 안 무섭고

미국 눈치도 안보고 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한번 쯤 가져본 적 있으신가요?

이 때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취급하며

조공을 받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약 고구려가 좀만 힘을 써서

백제와 신라를 아예 멸망시켰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더 웅장했을 것이다'

라는 상상을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는 왜 삼국을 통일하지 않은걸까요?

제가 이후에 이 부분에 대해서 따로 조사하면서

다른 세계사와 연관지어서

그 당시 고구려의 상황을 이해해봤습니다.

(역사전공자가 아닌지라

글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 달게 받겠습니다.)

 

그 당시에도 같은 민족이라 생각했을까?

우리가 역사시간에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같은 민족'이라고 부르면서

'역사적 뿌리가 같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고구려가 통일을 못한 게 아쉬운 이유는

'고구려가 우리 민족'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21세기가 아닌

삼국시대 당시에도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같은 민족'이라 부를

동질감이 있었을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서로 고조선의 핏줄이라는 것과

삼한의 자손이라는 걸 알고있더라도,

고구려와 백제의 왕족층

백제와 신라의 평민층이

서로 뿌리가 어느정도 비슷해서 오는 동질감은 있더라도

3국이 서로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인식이

그 시대에서는 사실상 없었다고 보는 쪽입니다.

우리가 언제 '민족'을 찾을까요?

우리가 힘든 시기에 '민족'이라는 단어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한민족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입에 오른 건

일제강점기입니다.

국가가 통째로 외세인 일본의 손아귀에 놓이면서

한반도의 역사와 전통을 하나 하나씩 망가트렸죠.

그 때 신채호 선생님을 비롯한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우리 민족'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두어서

역사를 서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1931년에 조선일보에서 출간한

'조선상고사'입니다.

이런 결속력을 통해

단순히 한반도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넘어서

같은 뿌리로 서로 똘똘 뭉칠 수 있는 힘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결속력이 삼국시대에는 생길만한 근거가 약했습니다.

만약에 그 당시에 중국에 막강해서

'우리 3국이 중국의 침략에 맞서싸우자'

이런 스토리로 흘러갔다면 결속력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삼국시대 후반에 수-당이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에는 강력한 통일 국가가 세워지지 않은

대혼란기를 거칩니다.

한나라가 통일제국을 만들지만

광무제 이후로 점차 몰락의 길을 걷다가

우리가 '삼국지연의'로 알고있는

중국 전국이 군웅할거의 시대가 되는 때가 옵니다.

그 후에 제대로 된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5호 16국 시대가 펼쳐지면서

중국 대륙 자체가 개판인 상황.

그러니깐 한반도의 삼국입장에서는

'무찔러야할 공동의 막강한 적'이 없는 셈.

거기다 서로 치고박고 싸우기 바쁜 상황이라

그 당시 시대상

'우리는 같은 민족이야!'라는 의식자체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전히 막강한 백제

백제의 전성기 시절 기준으로보면

백제도 고구려에 결코 꿀리지 않은 국가입니다.

영토는 고구려보다 작을 지언정

실속이 많은 국가였습니다.

우선 한강을 중심으로 교역이 활발히 이뤄져

중국대륙,일본열도와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전라도에 해당하는

마한 지역을 합병합니다.

전라도가 조선시대에도 곡창지대로 유명했다는 걸 생각하면

백제군은 보급 하나만큼은 정말 든든한 셈.

그리고 이 시기에는

고구려에 공격도 감행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가졌습니다.

이런 저력을 가진 국가이니

비록 장수왕 시기에는 고구려가 더 강하다할지라도

함부로 덤비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발목을 잡은 넓은 영토

장수왕이 남진정책을 실시한 사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고구려의 북쪽 국경입니다.

이들도 시시탐탐 고구려를 노리기 때문입니다.

남진정책을 추진했다하더라도

북쪽의 거란이나 후연 등

신경써야할 국가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고구려가 아무리 남쪽만 신경쓰고 싶다하더라도

위의 세력들도 막강하니

어느정도의 대비를 해놔야합니다.

안그러면 소위 말하는 '빈집털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것 이외에 고구려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이슈도 있고

혹은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되었든 돌아보면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방해요소가 많았던 걸로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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